편집실에서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을 위하여

장유진 편집장


<東國>의 시간 : 당신이 추억할 <東國>의 이야기


30년이 흘렀다. 80년대의 <東國>과 90년대의 <東國>, 또 2000년대와 2010년대의 <東國>은 무슨 이야기를 해왔을까. 마음속 깊이 교지를 품었을 편집장들의 이야기가 켜켜이 담긴 머리말 눈에 띄었다. 어쩌면 마감에 쫓기면서 썼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편집장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정말로.) 10년을 주기로 편집장들의 머리말을 선정해보았다. 한편으로 <東國>의 큰 변화의 계기였던 교지대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실어 기록했다.




1980년대의 <東國>


Being Prometheus


1983년, <東國>19호

문예부장 조현복


희랍 신화 속의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모습을 뱀, 사자, 용 등으로 마음대로 변화시킨다. 너무도 자주, 쉽게 변하기 때문에 프로메테우스 자신도 오히려 자기의 참 모습을 발견해 내지 못한다. 그러나 참모습을 찾게 될 때에는 예언의 능력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오늘의 우리는 과연 프로메테우스일 수 있는가?


우리는 끊임없는 실험과 창조를 통해 한 단계 한 단계 변화시키며 진보하는 자기 탐구에서 더운 보람을 느낀다. 오늘과 내일의 나를 위해 어제의 나를 말끔히 씻어 내고, 과거에 만들었던 상(像), 지금 만들고 있는 상(像), 앞으로 만들어야 할 상(像)의 교차 속에서 풍부한 사고와 생활양식을 자유로이 또 쉴 사이 없이 바꾸어 나간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들의 얼굴 모습은 인화지에 복사되어 있는 얼굴이기 보다는 피카소나 보딜리아니의 그림 같은 얼굴 모습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그것은 조금도 병리적이거나 환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참모습을 찾기 위한 노작(勞作)이며 실험이다.


우리들이 탐구하는 진리란 때로는 무서운 것이다. 진리를 안다는 것이 죄악으로 여겨졌던 시대도 있었다. 그래서 많은 지식과 발견이 개개인에게 은폐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이 탐구해 낸 진리들은 잠재워지거나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오늘의 학문과 예술은 오늘의 문제에 대처해야 하며, 대학은 오늘의 역사 속에서 숨 쉬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현실의 문제와 고난을 도외시할 수 없다. 대학은 현실을 초탈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이원성의 관계에 있다. 대학이 지녔던 고요함은 이미 사라지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이 전자문화에 의해 매카니즘화 되었다. 그러나 대학문화는 그렇게 도식적이거나 결정론적인 유전 법칙을 따르기 보다는 돌연변이의 성격을 띄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전통적인 질서나 현실 사회에 새로운 가를 부여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추구하는 참 모습의 일면이 될 것이다.


대학은 질서와 파괴, 이상과 현실, 모순과 반모순의 논리 속에서 새로운 변체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오늘날 복잡다양한 문화와 지식 가운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모두 Intelligentzia-Prometheus가 되어 쏟아지는 비를 애써 피하려 들지 말기를 바란다.




1990년대의 <東國>


세기말 블루스


1996년, <東國> 37호

편집위원회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과 통하는 뜻일게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 주기가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이다. 녹지를 대신해서 고층빌딩과 차도가 들어서고 사람과 자동차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주기는 10년도 채 못 된다. 어디 그 뿐인가. 의식주 패턴의 유행 속도는 그 주기가 더빠르다. 참으로 겁나게 빠른 세상이다. ‘스피드’라는 노래가 유행되는 세상이 아닌가. 그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하루살이 인생이다.


‘세기말’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위기와 멸망,’ ‘천국과 지옥’ 등. 이러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지나치게 부정적인 ‘세기말적 징후’들을 염두에 둔 탓이다. 역사에서 세기말적 징후들은 으레 있어 왔던 사이클이었음을 확인하면 말이다.


97년 대선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서 동악에도 선거판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양상은 이제까지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총학생회가 부활된 이후 총학선거가 처음으로 단선으로 치러지는 사태가 벌어졌고, 세 개의 단과대가 후보를 내지 못해서 3월 선거

로 미뤘다. 뿐만 아니라 공과대의 경우 투표율이 40%로 채 못 돼서 선거가 무효화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작년까지만 해도 선거는 축제였다. 갈수록 퇴색되기는 했지만 선거와 후보들에 대한 관심은 어디서나 볼 수 있었고,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갑작스럽게 그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학우들의 관심은 물론이고 후보자들의 치열함도 없어졌다. 이맘때만 되면 나불거리던 입조차도 꾹 다물고 있어서 냉랭하기만 하다. 소통이 안 된 채 점점 고립되어져 가는 것도 세기말적 징후인가?


80년대와 90년대를 구별 짓는 일이 유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사회과학의 쇠퇴와 공동체 문화의 상실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80년대, 학생들은 대학이라는 견고한 공동체 틀에서 자유로운 소통과 고민들을 공유할 수 있었고 사회과학은 탄압의 국면 속에서도 대학생들에게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현재, 대학에서 공동체 문화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대학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축제는 거의 그 의미를 퇴색해 가고 있으며, 사회과학서점은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대학은 철저하게 경쟁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대학이라는 공동의 사안보다는 개별화된 사안에 관심이 많아지는 곳으로 점차 변해가고 있다. 학생회는 대학 사회에서 관료적 공무원으로 변해가고 있고 동아리는 과거 자신들의 모습을 부정하고 있다. 이렇듯 공동체 문화의 무관심과 사회과학의 쇠퇴는 서로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국면을 타계할 수 있는가. 개별화 되어가는 주체는 막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손 끝 하나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주요한 것은 ‘소통’이다. 연대의 틀을 고민하기 위해서 먼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봐야 한다. 아무리 개인이 진보적이고 변혁적일 지라도 공동의 공간이 사라지고 있는 현재로서는 말 뿐인 ‘진보적 공간창출’보다는 ‘소통’을 통한 공간창출의 의지가 필요한 때라고 본다.


그것도 통방(通房)적인 의미에서 말이다.




2000년대의 <東國>


경계에 서서

2001년, <東國> 46호


편집장 이중열


#1. 경계조건

미분방정식의 일반해에 포함되는 임의의 상수 또는 임의의 함수를 정하기 위해서 생각하는 영역의 경계에 대하여 부과하는 조건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2. 그리니치 천문대

1675년 찰스 2세가 천문항해술을 연구하기 위해 런던 교외 그리니치에 설립한 천문대로 초대 대장은 J. 플램스 티드였으며 태양, 달, 행성, 항성의 위치관측에 주력하여 많은 공적을 남겼으며 1884년 워싱턴 국제회의에서 이 천문대 자오환을 지나는 자오선을 본초자오선으로 지정하여

경도의 원점을 삼았다. -www.sciencebank.co.kr



모든 경계선에서 사람들은 흥분한다.



영화 <순애보>에서 자살을 꿈꾸던 여주인공은 날짜경계선에서 숨을 멈추고자 한다. 어제와 오늘이 바뀌는 그 순간에 생을 마감함으로써 영원히 시간 속에 존재하려는 것이다. 매년 12월 31일마다 보신각 앞에서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이하는 그 수많은 인파들도 시간의 변화 속에서 무언가 짜릿함을 느끼려는 것 같다.


『東國』은 스스로 경계선이 되어 경계의 양 옆으로 늘어선 수많은 사람들을 이어주고싶다. 시대와 시대, 불신과 신념, 오해와 화해 사이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며 양옆으로 공평하게 짜릿함을 느끼게 해주려 한다.


이번 46집에서 우리는 시선을 조금씩 낮췄다. 세상이 멋대로 정해버린 기준 아래에서 묻혀버린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한 편, 그동안 조금은 소홀히 했던 학우들에게 다시 눈을 돌려봤다. 아직은 작은 시선이지만 언젠간 그들 모두를 담아내고 싶다.


『東國』은 오늘도 경계에 서서 우리 앞을 지나가는 이들을 바라본다. 그들의 변화를 보며 우리 스스로도 서서히 그리고 아주 조금씩 경계를 허물고 있다.



교지대 이야기



<東國> 교지편집위원회(이하 동국교지)는 자치언론과 독립언론의 사이에 있다. 기존 학내 언론에 염증을 느끼고 만들어진 타 대학의 독립언론이나 교지대를 받는 교지편집위원회와 달리 동국교지는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라는 이름을 갖고 예

산권·편집권 모두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물론 동국교지가 처음부터 교지대 없이 시작한 것은 아니다. 지난 1988년 이래로 학교, 총학생회와의 합의하에 학생회비와 별도로 교지대를 책정하여 학우들로부터 교지대를 받았었다. 하지만 학교는 동국교지와 어떠한 협의도 없이 2007년도 1학기부터 고지서에서 교지대를 임의로 삭제하였다. 본회의 교지 배포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동국교지는 각 단과대 건물에 교지를 배치하여 학우들이 교지를 원할 때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무인배포 방식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학교는 교지대를 납부한 모든 학우들이 1인당 1권씩 교지를 수령하지 못해 불만이 접수되었다는 말을 전하며 2006년 1학기부터 우편발송으로 배포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교지대를 인상하여 충당하라는 무책임한 대책을 내놓았다.


1년여의 시간이 지난 2007년, 학교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갑자기 고지서에서 교지대 항목을 삭제하였다. 또, 학교는 협상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동국교지의 그 어떠한 노력도 꼬투리를 잡아 거부했다. 그리고 때마침 언론사 통합이

진행 중이니 교지편집위원회가 학교에 소속된다면 걱정 없이 교지를 만들 수 있다는 달콤한 회유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2학기가 시작되기 직전 학교는 갑자기 동국교지를 학내 언론사와 자치기구로서 인정하지 못하며 언론사 통합과정에도 제외되었다고 통

보했다. 또 더 이상의 협상의 여지가 없으니 사비로 책을 내든지 알아서 하라고 전했다. 교지대가 끊긴 후, 동국교지는 광고비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광고비로는 제작비만 충당하기에도 버거웠기에 편집위원들 스스로 회비를 걷고 교지 선배들에게 모금활동을 하며 교지를 지속해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동국교지는 다양한 학내외 이슈를 다루며 발행해왔다. 2014년 9월에 발간된 <東國> 71집은 대학생들이 마주한 현실과 사회이슈를 중심으로 교내 학생회비 논쟁, 청소노동자 문제, 세월호 애도 강요 등의 기사를 담고 있다.


동국교지는 1986년도부터 현재까지 같은 자리를 꿋꿋이 지켜왔다. 자치언론에 대한 학우들의 관심 부족, 편집위원 수의 감소 등으로 위기에 직면한 때도 있었고 교지의 질이나 양, 또는 기사 소재에서 독자들의 만족감을 채우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국교지는 언제나 학우들이 알아야 하고 필요로 하는 기사를 학생 기자의 시선에서 올곧게 전달할 것이다. 또 문제에 대한 비판을 망설이지 않고, 지금보다 더 나은 자치언론 <東國>으로 나아가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많은 학우들이 더 이상 귀여운 레고가 그려진 ‘노란 책’으로만 동국교지를 기억하지 않기를, 노란 책이 아닌 ‘동국교지’로서 기억해주기를 바란다.[각주:1]


···학내 유일한 자치언론기구인 교지편집위원회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그 존립을 무너뜨려 더 이상 학우들의 진실된 목소리를 담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학내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는 것과 동시에 학우들의 눈과 귀를 막아 알권리를 억압하는 행태임이 자명한 사실입니다. 학교에 소속된 언론기구만이 유일한 언론기구가 될 수 있다는 학교당국의 자유언론에 대한 무지한 인식과 언론을 홍보도구로 일삼아 지배하려는 권력남용은 곧 학내의 민주주의를 심대하게 후진시키는 도태된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당시 교지대 관련 대자보 중 발췌



2010년의 <東國>


편집장 이재임


학생들의 자치 활동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면, 많은 이들이 대가 없이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면 교지가 가야 할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학교 이름을 교지의 제호로 내건 선배들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교지는 그 이름 때문에 학교 홍보지라고 오인당하는 처지입니다. 그러니까, 교지는 매번 다음 학기를 걱정해야 합니다.


교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면, 희생정신이 뛰어난 사람들의 집단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돈 받고 하는 일들인데 이들은 오히려 돈을 내고 글을 쓰면서 고된 일 마다지 않습니다. 저는 매번 못난 편집장이 되거나 희생하는 편집장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이탈리아계 유대인인 프리모 레비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에서 10개월 동안 지냈고, 그 체험을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으로 풀어냈습니다. 강인한 육체도, 사람을 끄는 매력도 없었던 그는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를 마지막 장에 적고 있습니다. “지칠 줄 몰랐던 인간에 대한 관심”과 “꼭 살아남아 우리가 목격하고 겪은 일들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지”, 그럼으로써 “굴욕과 부도덕에서 나를 지키겠다는 의지” 말입니다.


너무 비장한 결심인가요. 지금 우리가 1980년 5월 18일의 전남도청에 있는 것도, 유대인으로 아우슈비츠에 갇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문학이 유행에 따라 소비되고, 지치지 않는 비정상적인 열정과 경쟁을 원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침몰하는 배에 갇혀서, 군대에서 맞아서, 날아오는 포탄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눈감고 귀 막지 않으면 비명이 들려오는 시대입니다.


<東國> 교지는 얼굴 돌리지 않고 그 상황들을 마주하며 살아남겠습니다. 우리가 대학에 왜 왔는지 시작해서 이곳을 어떻게 다녀야 할지 고민하고, 저 사람들은 왜 몇날 며칠을 본관 앞에서 서 있어야 하는지 알아보고, 팽목항과 퀴어 페스티발에 달려가겠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다만 그것이 동국 학우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기를, 간지러웠던 속을 긁어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1. <東國>교지 72집 수록.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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