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도와줄까, 생각한 것은 잠시뿐이었다

 

   동국대학교 학생들은 습관적으로 불평한다. 길이 가파르다고. 계단이 너무 많다고. 다리에는 근육통이 들러붙을 지경이고 굽 있는 신발 신는 일은 꿈도 못 꾼다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학림관에서 문화관을 향하는 길, 헐떡고개를 넘을 때면 눈을 감고 학교에 폭탄 수천 개를 떨어뜨려서 평평하게 만들어버리는 상상도 수없이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디까지나 힘든 일에 그쳤다. 학교 어딘가를 돌아다니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힘든 일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 나에겐 충격적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동대입구역 쪽의 경사로를 올라가는 사람을 본 적 있다. 그의 굵은 팔뚝이 휠체어 바퀴를 힘차게 밀고 있었지만 속도는 더뎠다. 곁에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재빨리 뛰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 보이지 않는 사슬이 그의 휠체어를 바닥에 결박시킨 것처럼 보였다. 가서 도와줄까, 생각한 것은 아주 잠시뿐이었다. 내가 그의 장애를 방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해서 나는 억지로 시선을 돌렸다. 에스컬레이터를 기다리는 줄에 섰다. 그날도 내 앞에 서 있는 학생들은 불평하고 있었다. 학교가 산이나 마찬가지라고. 돌아다니기 너무 힘들다고. 휠체어를 탄 그 남자가 끝내 목적지에 도착했는지를 나는 차마 확인하지 못했다.

 

   그날부터 휠체어를 탄 사람의 모습이 수많은 순간마다 어른거렸다. 등교의 불편함을 느낄 때, 명진관에는 계단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알았을 때, 후문은 시작부터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 혜화관과 만해관를 잇는 다리를 지나기 위해서는 계단을 올라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알았을 때. 내가 다니는 이 학교는 몸이 불편한 학생에게 허락되지 않은 장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도움을 구하는 것도 용기예요”

 

   “아무래도 지형이 불편한 부분이 많기는 해요. 뭐 후문 쪽만 봐도 절대로 휠체어를 타고는 들어올 수가 없거든요. 친구들하고 같이 후문 쪽으로 나가서 놀려고만 하면 저는 따로 다른 방향으로 멀리 돌아가야 돼요. 근데 그거야 애초부터 학교가 세워진 지형 자체가 그런 거니까… 하드웨어적인 한계인 셈이죠.”

 

   기숙사 1층 카페에서 법학과 박성준 학우를 만났다. 휠체어에 앉은 그는 질문들을 주의 깊게 듣고 나서 분명한 말투로 대답했다. 관념적으로 생각한 것보다, 실제로 휠체어를 타고 동국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그만이 할 수 있는 말들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학교 쪽에서는 많이 도와주시려고 해요. 하드웨어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소프트웨어적인 쪽으로. 무슨 말이냐 하면, 되게 세심하게 챙겨주시거든요. 수업 들을 수 없는 건물이 있기는 해도 시간표 같은 것도 다 우선적으로 짜주세요. 기숙사 배정 같은 경우도 장애학생들에게는 1인실로 주고 우선적으로 배정해주고 도우미 학생 제도도 있거든요. 근로 장학생 형식인데 책상 정리라든지 물 떠다오는 거라든지 하는 잔심부름을 그 친구들이 해줘요. 정기적으로 간담회를 열어서 불편한 건 없는지 하나하나 물어보시기도 하고.”

 

   학교에서 받은 도움 중에 기억에 남는 일을 물어보니 박성준 학우는 학교가 자신을 위해서 공사까지 벌인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저는 법학관에서 수업을 듣는데 거기 멀티미디어실에는 선을 넣을 수 있게 돼 있는 턱이 있어서 들어가기가 되게 힘들었어요. 그거 때문에 제가 학교에 연락을 하니까 경사로를 설치해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기다리다가 다시 연락드리니까 그때 이번 주부터 공사가 시작될 거라더군요. 그래서 잘 다니고 있어요.”

 

   박성준 학우는 비단 학교의 관련부서뿐만 아니라 일반 학생들에게서도 도움을 받은 적 있다고 했다. 아 진짜 우리 학교 학생들 착한 것 같아요. 그는 양 뺨에 미소를 펼치며 말했다. 그는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는 수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던 때였는데, 정문 있는 쪽에서 팔정도까지 올라가고 있었어요. 그게 팔 힘만으로 바퀴를 굴려서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야하는데 정말 어려웠죠. 땀 뻘뻘 흘리고. 제가 또 자존심은 세서 남들한테 도와달라는 말은 절대 안 하고 나 혼자 알아서 갈 거다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여학우 두 분이 맞은편에서 걸어오시더라고요. 저는 그냥 고개를 숙이고 가던 대로 가고 있었고 그 분들은 저를 스쳐지나가셨죠. 그런데 조금 이따가 그분들이 다시 돌아와서 휠체어를 밀어주시는 거예요. 경사를 다 올라가고 나서 한분이 미소지으면서 그러시더라고요. 도움을 구하는 것도 용기라고.”

 

   아주 간혹 이상한 분들도 있기는 하지만 괜찮은 분들이 정말 많다고, 그리고 젊은 분들이 많은 대학교 안에서는 더 좋은 분들이 많다고 박성준 학우는 말했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신다고. 어쩐지 안도감이 들었다.

 

   편견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학교는 통계상 장애인 이동권이 심하게 침해받고 있는 대학 중의 하나라고 했기에 학교 당국이 동국대 내의 장애학생들에 대해서 배려가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료 조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은 그 편견을 반증하고 있었다.

 

   동국대학교에는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있다. 센터 내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 학교에는 법대에 2명, 사과대에 1명, 경영대에 4명, 공대에 5명, 총 12명의 장애학생이 재학 중에 있다(2013년 6월 11일 기준). 12명, 결코 많은 수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장애학생지원센터는 이들에게 많은 지원을 해준다고 했다. 가령 등록금 부문에서도 장애등급이 1∼2급인 학생에게는 전액 감면 혜택을 주며 3∼4급인 학생들에게는 반액 감면, 5∼6급인 학생들에게는 매학기 100만원씩을 지급해준다. 또한 도우미 지원 사업도 추진한다. 재학 중인 장애 1∼3급 학생들에게는 도우미 학생을 붙여서 생활에 밀착된 보조를 돕는다. 근로 장학생 형태로 지원되는 도우미 이외에도, 중증학생 지원을 위한 수화통역사, 속기사 등의 전문도우미도 장애학생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있다. 학교에 등교하면서 이런 곳에 장애우분들은 어떻게 다니시나 걱정했던 것보다 학교는 장애학생들을 돕기 위해서 힘쓰고 있었다.

 

 

   갈 수 없는 곳이 없도록

 

   그러나 여전히 한계는 존재한다. 휠체어를 탄 학생이 다니는 게 애초부터 불가능한 건물들, 명진관이나 문화관 등에서 전공수업을 들어야 하는 장애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의문이었다. 조사 결과 장애학생들이 입시에서 지원할 수 있는 과는 처음부터 몇몇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학교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리라. 학습하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장소에 학생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지원에도 한계가 있었을지 모른다. 학교 측에서 장애학생들을 위해서 나름대로 세심한 신경을 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다만 명진관에서 수업을 들을 때 창밖을 내다보면 누군가는 절대 이곳에서 학교를 내려다볼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쩔 수 없다, 라는 말은 수많은 세월 동안 가능성을 매장해 왔다. 동국대학교에서 인문학, 예술을 전공하고 싶은 학생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불가능한 일인가. 장학금 지급과 간담회를 통한 장애학생들의 불편사항 직접적 수용, 수강신청 우선권과 도우미 사업 등의 혜택을 통해 동국대학교는 현재 학교에 재학 중에 있는 장애학생들에게 많은 편의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나아가서, 애초부터 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신경 쓸 수는 없을까. 명진관에서 휠체어를 보는 날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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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ove

    이런 글을 장애인들이 본 다면 울컥 할 것 같네요....

    2016.11.06 15:0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