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퍼러스 레오

 

 

첫 순간? 이유를 묻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아주 강렬할 것이라는 그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사실 그 순간은 희미한 편이다. 찬란한 다음 순간들이 끊임없이 덧칠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굳이 더듬어 보자면 적당히 나른하던 어느 날 새벽, 밝게 빛나는 화면 속 그의 눈과 마주친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가 웃었다. 다음, 다음, 다시 다음. , 조금만 더. 다음을 찾는 손길은 해가 뜰 때까지 이어졌다. ‘어쩌면 이토록 한 사람 생각으로 이 밤이 이다지 팽팽할 수 있느냐’.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공카1) 의 등업 문제를 풀고 있었다. 입덕2) 이었다. 별빛3) 들은 내게 레신셋4) 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즐기는 취미의 종류는 다양하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연령대, 성별, 학력 등의 많은 조건을 떠나 다양한 취미를 갖는다. 사람들의 취미는 점차 다양해졌고, 우린 때때로 바로 옆 사람의 취미가 처음 들어보는 일인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옛날에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취미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이상한 시선을 보내는 일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취존이라는 말이 생 길 정도로 타인의 취미활동에 대해 존중하는 모습이 많이 퍼져있다.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즐기던, 그것이 반인륜적 행위거나 나에게 피해를 주는 일만 아니라면 괜찮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취존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취미 때문에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 들, 아닌 척 하지만 여전히 비웃음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 아이돌을 좋아하는 20대들은 그런 시 선의 가장 큰 표적 중 하나이다. 대학생의 수많은 취미생활 중 덕질이라고 불리는 팬 활동은 생각보다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팬 활동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들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호칭은 덕후 혹은 빠순이. 아이돌 팬들은 아이돌이 사회에 서 무시당하는 만큼, 혹은 그보다 더 무시당하곤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팬 활동이 진짜 문제 있는 일은 아니다. 아 왜 뭐, 대중문화인데 대중이 좋아 하면 안 될 거라도 있겠는가. 하지만 사람들은 아이돌을 좋아하는 대학생, 특히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는 여대생을 쉽게 무시하고 비웃는다. 사회에서는 흔히 아이돌 팬 활동이 10대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아이돌을 좋아하는 20대들은 청소년기에 끝내고 왔어야 할 철없는 짓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고 체계적으로 살아야 할 시기에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쓴다는 시선.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순간 들려오는 말들은 너 보다 어린 애들을’, 혹은 나 이 먹고 참 할 짓 없다’, ‘이제 그만할 때 되지 않았니', ‘부모님이 뼈 빠지게 일해서 대학 보내놨더니 저런 짓이나 하고 있다등등 비난과 비웃음이 가득하다. 아이돌 팬으로 활동하는 20대들은 언제나-같은 팬을 만나지 않는 이상- 비웃음이나 걱정의 대상에 놓여있기 일쑤다.

아이돌 팬에 대한 이런 좋지 않은 시선들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아이돌 팬덤 문화의 시 작이었던 90년대부터 팬 문화의 여러 부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는 했다. 사실 팬 문화 중 비판 받을 만한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팬들 스스로 자정을 거치기 위해 열심히 노력 하고는 있지만, 당연히 비판받을 일을 감싸고도는 지나친 내 오빠 지키기는 팬이 아닌 사람들에 게 불쾌감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또 어느 순간부터 급격하게 생겨난 사생들은 아이돌의 안전 을 위협하고 사생활을 침해하는 등 아이돌과 팬 모두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사생은 연예인의 모든 것을 알아내기 위해 밤낮없이 따라다니는 사람들을 말한다. 팬이 아닌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들도 팬이겠지만, 사실 지나치게 독특한 일인데다 가수들이나 팬에게 사생은 팬이 아니라고 칭해지기 때문에 지금 말하려고 하는 팬 문화의 일부라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세태 속에서 팬들이 선택한 방법은 일코’5)였다. ‘내 오빠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숨기겠다는 것이다. 당신의 걱정스러운 눈빛도, 당신이 휙 던지고 금방 잊어버릴 나만 가슴 아픈 비난 도 더 이상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일코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취미생활을 감추는 의미로 사용하던 단어였다. 사회에서 극단적이리만큼 비난받던 취미생활을 하던 사람들의 단어였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와 달리 아이돌 팬 활동 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는 단어이다. 비난받지 않으려면, 내가 행복하려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숨겨야 하는 것이다.

용감하게 일코를 해제하는 몇몇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팬들은 같은 팬이 아니라면-같은 팬이라 할지라도-자신이 그 아이돌의 팬임을 잘 밝히지 않는다. 팬 활동을 하다보면 인터넷에서 아이돌 팬들이 듣는 말들이 얼마나 심한 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얼굴을 맞대는 사이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지만, 인터넷 속 덕질이라는 말로 폄하되는 수많은 팬 활동이나 무시 들은 팬들의 입을 닫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아무리 연예인 걱정이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할지라도, ‘내 오빠의 감기 소식 하나에도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게 팬이다. 열애설이라도 나면 어쩌나, 실력 논란이 나지는 않을까, 예능 에 나가서 무시당하는 건 아닐까, 소속사에서는 왜 저렇게 내 오빠를 지원해주지 않는 건지, 물이 들어 올 때 노를 저어야 할 텐데. 아이돌 팬의 걱정은 한도 끝도 없다. 괜히 팬이 아이돌을 내 새끼라고 하는 게 아니다. 저렇게 몇 년 지나면 진짜 내가 키운 느낌이라고.

그러니까, 아이돌 팬 활동이라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언제 바스러질지 모르는 쿠크6) ’를 부여잡고 내 새끼의 행복을 비는 일. 이런 팬 활동에서 20대들은 흔히 아이돌 팬 층이 라고 생각되는 10대에 비해 훨씬 유리한 자리에 있다. 시간적인 면에 있어 10대에 비해 자유로운 것은 물론, 스스로 경제력을 갖추게 되면서 부모님 돈이 아닌 자신의 돈으로 팬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아이돌 팬들이 그토록 많이 비난받고 있는 돈지랄이 해결되는 것이다. 내가 번 내 돈으로 취미를 즐기겠다는 것은 대부분 부모님 돈으로 팬 활동을 할 10대에 비해 훨씬 더 비난에 대해 당당하다.

팬 문화는 생각만큼 미숙하지 않다. 내 가수의 이름으로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고 사막에 숲 을 만들고, 쌀화환을 기부하는 등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활동들도 많다. 또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10대가 주축이 되어 끌어나가고 있는 문화라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단순한 숫자로는 10대 팬 들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경제력을 제공하는 것은 결국 20대 이상의 성인 팬층이기 때문 이다. 20대들의 팬 활동은 든든한 경제력으로 뒷받침 된다. 비록 저 오빠스러움 넘치는 아이돌이 나보다 네다섯 살 쯤 어릴 수도 있지만, 기꺼이 오빠라고 부르면서 앨범을 사고 스밍7) 을 돌리며 콘서트 티케팅 전쟁에 참여하는 경제력은 20대가 쥐고 있는 것이다. 내 가수가 나오는 촬영에 예쁘게 포장한 음식과 음료수를 서포트하고, 생일이면 지하철에 광고를 걸고, 굿즈8) 를 만들거나 구매하는 것도 20대들이 주축인 경우가 많다. 특히 아이돌 팬 문화의 독특한 점 중 하나인 홈마9) ’ 또한 10대는 불가능한 일이다. 고가의 카메라 장비를 갖춘 채 공식적인 행사들을 모두 따라가는 일을 어떻게 10대가 자유롭게 할 수 있겠는가.

여기까지 읽었다면 당신은 저렇게 쓸데없이 아이돌한테 돈쓰고 시간 쓰고 마음 쓰고, 힘들면 그만하면 되는 거 아닌가, 라면서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업과 과제와 팀플, 인간관계 에 지쳐 돌아온 밤 모니터 속에서 나를 향해 웃는 내 가수, ‘내 오빠의 사진 한 장은 다시금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준다. 아 정말로, 농담 아니고 진짜 웃음이 난다. 이 각박하고 힘든 세상 에서 존재만으로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수많은 어려움 에도 불구하고 하는 건 그만큼 행복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내 오빠의 팬 활동을 열심히 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들은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일들이다. ‘내 오빠에게 자랑스러운 팬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착실히 돈을 벌고, 좀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 다. 이 많은 힘든 일의 원동력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나는 오늘도 열심히 공부한다. 좋은 직장을 잡아 돈도 많이 벌 거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내 가수 앨범도 사야하고, 콘서트도 가야하고, 팬 사인회도 가야하니까. 내 가수의 자랑스러운 팬이 되어야 하니까. 그러니 그만 그 입 꼬리 좀 내려주셨으면 좋겠다. 우린 아이돌에 미쳐 삶을 놓은 철없는 아이들이 아니다.

 

 


1) '공식 팬 카페'의 준말
2) ‘덕질에 입문한다’의 준말.
3) ST★RLIGHT. 아이돌 VIXX의 팬덤명

4) ‘레오가 신경 쓰이면 게임 셋’의 준말. 팬 사이에서 쓰이는 말로, 말과 표정이 풍부하지 않은 레오에게 신경이 쓰이는 순간 입덕한다는 의미.

5) 일반인 코스프레의 준말. 팬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것을 의미.
6) 쿠크다스의 준말로 쉽게 부서지는 성질을 마음에 비유해 표현한 것.

7) 스트리밍의 준말.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음원 성적을 좋게 만들기 위해 음악 어플에서 음악을 재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8) 가수의 사진이나 관련 있는 글귀 등이 박힌 다양한 물건들로, 야광봉이나 플랜카드, 슬로건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9) 홈마스터의 준말.

 

 

 

 

 

©밀리퍼러스 레오

 

 

INTERVIEW

아이돌 팬 활동의 특색을 꼽을때면 빠지지 않 는 것이 홈마스터다. 커다란 대포 카메라가 먼 저 떠오르는 이들은 누구일까. 현재 아이돌 VIXX의 멤버 LEO의 홈마스터로 활동하고 있 는 '정택운닷컴'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東國아이돌 홈마스터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나요?

정택운닷컴(이하 정)우선 가장 기본적인 일은 좋아하는 아이돌의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일이에요. 그리 고 본인이 찍은 자료를 많은 팬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SNS나 직접 만든 홈페이지를 통해 올리죠.

또 좋아하는 가수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일이나, 더 나아가 그 가수의 이름을 걸고 사회에 공헌이 되는 일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전자의 경우에는 새 앨범이 나왔을 때 앨범 홍보 효과와 응원 차원에서 방송국 스텝들 과 멤버들이 모두 먹을 수 있는 식사나 떡, 음료수 등을 준비해 서포트를 하기도 하고요. 드림콘서트나 아이 돌 체육대회처럼 많은 가수들이 나오는 경우 크게 플랜카드를 걸기도 해요. 후자의 경우에는 생일이나 데뷔 일 등을 기념해 팬들끼리 모금이나 여러 가지 형태로 돈, , 옷 등을 모아 기부하는 것 등이 있어요.

 

東國홈마스터로 활동하면서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요?

금전적인 부분과 체력적인 부분이 가장 큰 것 같아요. 행사 티켓 자체가 비싼 경우도 있고, 혹은 원가는 저렴하지만 웃돈(흔히 말하는 프리미엄)을 붙여서 파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요.

체력적으로는 선착순 입장인 경우 앞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여러 날 밤샘을 해야 한다던지, 야외 행사의 경 우 밖에서 오랜 시간대기 해야 하기 때문에 덥고 추운 것을 견디는 것, 또는 가수의 스케줄을 따라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들고 여러 지방 행사를 빡빡하게 돌아다녀야 한다 던지 할 때 많이 힘들어요.

그리고 이건 딱히 어려움이라기보다는 속상함인데, 그 아이가 예쁘고 멋있는 만큼 사진에 잘 담아내서 찍어 주고 싶은데 실력이 마음에 못 미치는 것 같을 때 많이 속상합니다.

 

東國아이돌 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썩 좋은 편은 아닌데요. 왜 그런 인식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한국 사회에서 아이돌이란 실력 없는데 얼굴만 잘난 애들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많은 아이돌들도 방송에 나와서 아이돌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 는데요. 이런 인식 때문에 자연히 그들을 좋아하는 팬들도 나이 먹고 철없이 아이돌이나 좋아하는 사람으 로 무시당한다고 생각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아요. 그렇게 무시하는 사람들이 내가 좋아 하는 가수가 노래 부르는 것을 단 한번이라도 듣고 폄하하는 것인지 묻고 싶기도 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것 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죠.

 

東國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유는 하나인 것 같아요. 가수가 좋으니까. 그 아이를 보고, 사진을 찍고, 빛나는 순간을 많은 사람들 과 나눌 수 있는 것이 행복해요. 이 자리에서 너를 응원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서. 그 아이가 가는 길의 앞에 탄탄대로를 미리 깔아줄 수 있을 만큼 능력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힘든 길을 걸어도 옆에 함께 걸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해서. 그래서 하는 거죠.

 

 

 

 

장유진 편집위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